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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할끼타 필리피나스]이제까지, 그리고 앞으로

 


 

뉴스일자: 2009-11-02
 

이해정(30기)
활동분야: 한국어교육
활동기관: 기술교육개발청 (TESDA Regional Training Center)
 
지난 5월12일이 되던 밤, 밤새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전날까지 짐을 싸느라 너무 피곤했던 탓에 새벽 버스에서 단잠을 잤다. 사실 너무 정신이 맑으면 이 생각 저 생각이 들어서 부모님 보기가 더 아쉬울 것 같아서 버스에서 자려고 미리 생각했었다. 새벽 5시쯤 공항에 도착하니 반가운 얼굴의 동기들 몇몇이 있었다. 그래도 함께 가는 이가 있으니 마음이 놓였다. 공항에서 수화물 때문에 우리는 다시 한 바탕 짐과의 소동을 벌였다. 정보가 좀 더 있었더라면 짐 때문에 많이 고생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필리핀에서 구할 수 있을지 모르고 혹시나 하며 이것저것 싸온 것들,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음식들 등으로 절대 빼버릴 수 없는 물건들을 모조리 안고 우리들은 필리핀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함께 하면 두려울 것이 없다 했던가… 15명이나 되는 동기들과 함께 하니 비행기 안에서도 여유를 부릴 수 있었던 것 같다. 한국의 5월의 푸름을 뒤로 한 채 필리핀 공항에 도착하니 반기는 것은 뜨거운 햇살과 후덥지근함…… 하지만 나는 이내 필리핀 하늘의 예쁜 구름들에 매료되고 말았다. 그것은 10개월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필리핀 하늘은 정말 예쁘다.
현지 훈련을 거친 뒤 설레임과 두려움을 안고 나는 타끌로반이라는 도시로 홀로 떠나왔다. 선배 단원도 없었고, 혼자 가는 길이였고, 처음 듣는 도시 이름에, 현지어 선생님들도 잘 모르던 도시 타끌로반… 앞으로 나의 생활은 어떻게 펼쳐질까…
타끌로반의 6월은 축제의 현장이었다. 임지 방문 시기부터 임지 파견 되던 날까지도 계속 축제로 떠들썩했지만 내 마음은 너무 쓸쓸했다. 말도 잘 안 통하고 문화도 다르니… 하지만 이미 예상했던 일 아닌가.
내가 일하는 TESDA(Technical Education and Skills Development Authority)라는 기관은 한국으로 따지면 직업기술학교나 한국산업인력공단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이 곳에서는 기술 교육이 주로 이뤄지고 있는데, 지금 한국어 교육 외에 다른 언어 수업은 없다. 그래서 수업 내내 용접하는 소리나 쇠 가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마이크를 이용해서 수업을 하는데도 너무 시끄럽다. 그렇지만 ‘교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가 하면서 열심히 수업을 하고 있다. 한국인이라고 해서 모두 한국어를 가르칠 순 없다. 사실 나는 국문과 출신은 아닌데, 외국어를 배우면서 외국 친구들한테 한국어를 가르쳐주다 보니 오히려 한국어를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한국어교사 양성 과정까지 이수하게 됐다. 나의 첫 수업을 위해 한국에서부터 많은 자료를 조사해오고 경험담도 많이 듣고 여러 준비를 해왔다.
그런데 모든 것이 생각했던 대로 이뤄지진 않았다. 우리나라의 교육 여건이나 사고 관념과는 너무나 달랐다. 처음엔 학생도 없고 교재도 없고 수업 환경이 제대로 구비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지만 나의 맥을 빠지게 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기관 사람들의 대처 행동이 나를 어이없게 할 때가 많았다. 미리 합의한 사항에 대해서도 제때, 제대로 지켜지는 일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급한 성격이 아니었는데 여기 오니 나 혼자만 성급한 사람인 거 같았다. 이들은 즐길 줄 알고 여유를 부릴 줄 안다. 모든 것은 지나치면 모자라느니 못 하지만…… 첫 출발할 때의 나의 열정은 허무감과 우울함으로 바뀌기도 했다.
가끔은 여기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 외롭고 힘들긴 하지만, 내가 여기 온 이유, 내가 처음에 마음 먹었던 ‘봉사’를 생각하면서 다시 마음을 다지곤 한다. 나는 여기 한국어를 전파하고 한국 문화를 알리고 조금이나마 한국에 대해서 친근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자 온 것이다. 다른 여건들이 날 힘들게 해도 이런 처음의 마음가짐을 생각하며 나의 임무를 수행한다면 다른 것들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참 단순하면서 쉬운 이 진리를 매번 무언가에 부딪칠 때마다 다시 깨닫고 있다.
인간관계나 환경적인 여건과의 부딪힘 속에서도, 나는 가르치는 보람을 확실히 느끼고 있다. 한글을 단순히 그림처럼 인식했던 필리핀 학생들이 이제는 또박또박 예쁜 글씨를 쓰고, 문장을 만들어 나에게 질문하고 말을 걸 때면 나 자신도 정말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고 보람을 느끼게 된다. 잠깐 잠깐 들려준 노래도 즐겁게 음을 따라하고 가사를 묻기도 한다. 특히 아리랑을 처음 가르쳤을 때 그들이 따라 부르는데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하였다. 아리랑이 슬픈 사랑의 노래라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전통 민요를 겉모습도 다르고 문화나 사고방식도 다른 이들의 입에서 불리어지고 있으니 얼마나 감동적인 일인가? 그리고 그것들을 한국어를 배우지 않은 친구들에게 설명해 줄 때 정말 대견하게 느껴지고 보람된다. 외국에 살다보면 다들 애국자가 된다는데 우리 코이카 단원들도 한번쯤 느껴본 감정 아닐까?
‘봉사’라는 것은 생각을 먼저하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이제껏 살면서 내 처지를 생각하고, 이런저런 여건이 안된다는 생각에 미뤄왔다. 그 사이에 생각은 커지고 한 살 한 살 나이만 먹어온 것 같다. 그래서 여기 와 있는 게 가끔씩은 조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좀 더 빨리 실천에 옮겼다면 그 동안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앞으로의 삶에 더 나은 설계를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남을 위해 시작한 봉사지만 결국 자신의 삶을 더욱 풍족한 것을 느낄 수 있다. 비록 혼자 지내는 이 시간들이 아주 쉬운 것만은 아니지만 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이해하면서 더 넓은 안목을 지닐 수 있다. 앞으로의 삶에서 나 자신을 강하고 곧게 성장시키는 소중한 보물이 될 것이다.
나는 겁이 좀 많아서 무작정 실천에 옮기는 일은 잘 못한다. 하지만 누군가 다른 것도 아니고 지금 가지고 있던 것을 잠시 접어두고 새로운 2년을 맞이하는 것이 겁이 나서 코이카에 지원하는 걸 망설이고 있다면 나는 자신있게 추천해주고 싶다. 비록 혼자 지내는 것이 겁이 날 때도 있지만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고 나 자신을 돌아 볼 수 있게 한 나의 과감한 선택에 스스로 칭찬하고 싶을 정도니까!!!
새로운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쭉 밟던 길만 밟게 될 것이다. 세상은 정말 넓고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이, 내가 가 볼 수 있는 길이 너무나 많다. 이 많은 길들을 그냥 내버려 둘 것인가?
인생에서의 2년은 짧지만, 이 2년이 얼마나 큰 밑거름이 될 지 이미 알고 있다. 앞으로 남은 1여년의 생활을 더 보람되고 알차게 지낼 수 있도록 좀 더 부지런해져야겠다. 나의 앞날은 필리핀 햇살보다도 더 뜨겁고 밝다. 아자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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