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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EDSA People Power 1, 민중의 힘!!!

 


 

뉴스일자: 2008-02-25
 

아로요 대통령은 EDSA 피플 파워 22주년을 맞아 오는 2월25일(월)은 ‘특별 비근무 휴일’로 선언했다.
피플파워는 1986년에 필리핀에서 발생한 무혈혁명으로써 EDSA혁명 또는 1986년 필리핀 혁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필리핀의 민주주의를 재정착시켰고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일깨우는 한편 국가를 하나로 묶는 원동력이 됐다 그리고 20년동안 필리핀 장기집권을 해왔던 페디난드 마르코스(Ferdinand Marcos) 대통령의 퇴진했으며 전 세계에 “피한방울 흘리지 않는 필리핀 민중혁명”으로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주요 시위는 에피파노 데 로스 산토스(Epifanio de los Santos Ave)애비뉴와 올티가스(Ortigas Ave) 애비뉴에서 벌어졌으며 다수의 정치인들과 군장성 및 20만명의 필리핀인들이 참여했다. 이는 계엄령으로 지난 20년간 필리핀을 독재를 통해 마르코스 대통령의 부정부패에 저항하며 기나긴 시간 동안의 어두운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1986년 2월 22일부터 25일까지 시위는 계속됐다. 이때 처음으로 가난한 사람과 부자, 공산당 지지자들과 교회 지도자들 등 절대 다른 이유로는 만나지 않았던 사람들이 국가와 국민을 구하자는 한가지 이유만으로 모였다는 깊은 의미가 있기도 하다.
 
이 평화적인 혁명은 필리핀에 2가지 업적을 남겼는데 첫째는 필리핀 군의 양분화를 막았고, 둘째는 페디난드 마르코스가 아키노에 패하고 권좌에 물러났다는 점이다. 이 혁명 이후 EDSA에는 역사적인 피플파워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기념비가 세워졌다.
마르코스 통치시대
 
마르코스 임기기간 동안 그는 필리핀의 절대적인 권력을 장악했었다. 1972년 9월21일 마르코스 는 서서히 고개를 드는 무법질서와 공산당의 폭동 위협을 빌미로 계엄령을 선포했다. 계엄령아래 언론의 자유는 폐지되고 국민들의 자유는 박탈되며 의회와 미디어 기간은 문을 닫음과 함께 상원의원 베그니노 니노이 아키노(Benigno Ninoy Aquino)를 포함한 야당 지도자들과 군 행동주의자들을 체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1973년 이후 적법한 이유로 임기를 연장할 수 없게 된 마르코스는 반대파 정치인들을 감옥에 넣은 후 헌법을 고쳐 의회제로 바꾸는 등의 방법을 동원해 1973년 이후에도 정권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그러한 반대파 숙청을 단행한 후 마르코스는 지속적으로 국고를 개인 재산으로 횡령했으며 그에 대해 반기를 드는 정치인들을 무자비하게 사살했다. 그 결과 필리핀의 경제는 급격히 쇠퇴했으며 결국 동남아시아의 맹주였던 필리핀의 경쟁력은 사라져 버렸다.
 
그리해 많은 이들이 마르코스의 정책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고 정부를 바꾸려는 공모를 진행했다. 
이러한 반 마르코스 진영은 베니그노 니노이 아키노(Benigno Ninoy Aquino) 상원의원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을 눈치챈 마르코스는 니노이 아키노를 국내 추방해 미국으로 쫒아보냈으며 아키노 지지자들을 철저히 감시했다.
 
그러나 1983년 니노이 아키노는 긴 추방 생활을 마치고 필리핀에 돌아오는 길에 암살되는 모습이 필리핀 전역에 생중계로 방송이 됨으로서 마르코스는 국민들의 엄청난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이후 소규모의 반정부 집회는 대규모로 변했고 메트로 마닐라의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여기에 가담하게 된다. 또한, 아키노의 암살은 점점 약해져 가고 있는 마르코스 정권의 나약함을 그대로 드러냄과 함께 당시 마르코스는 잦은 질병으로 인해 자리를 비웠고 대신들이 나라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상태에 직면하게 된다.
코라손 아키노의 시대
 
이에 마르코스는 난국을 타게하는 호도책으로 1986년 2월 7일에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게 되고 여기서 니노이 아퀴노 전 상원의원의 미망인인 코라손 아퀴노 여사와 경쟁을 하게 된다. 선거결과 필리핀의회에서는 마르코스의 당선을 선포하나 필리핀 국민들은 이를 부정선거로 간주하고 대규모의 시위가 벌어지게 되며 이와 발을 맞추어 필리핀 군부에서 코라손 아키노 지지를 선언하게 됐다.
 
군부와 국민 대부분이 아키노 여사를 지지한다는 것을 알게 된 마르코스는 1986년 2월 25일 하와이로의 망명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 결과 코라존 아키노가 필리핀 11대 대통령이자 첫 여성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된다.
 
혁명 이후
 
코라존 아키노가 이끈 정부는 마르코스가 무자비하게 짓밟아버린 자유를 민간인에게 돌려주는 과도기적인 역할을 충분히 소화했다. 의회는 해체되고 사람들은 공직으로 복귀됐다. 새로 개정된 헌법은 계엄령에 대한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무슬림 민다나오 등 자치권을 인정하는 한편 대통령제를 다시 부활시키고 양원제를 재도입했다. 아키노의 정권아래 필리핀의 민주주의가 성숙해 지는 한편 국민의 자유가 보장되는 시대가 되었다.
 
정리: 서영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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